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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어느 소방관의 죽음

김가영 2025-09-08 11:58 25

최모란 사회부 기자
최모란 사회부 기자
구급대원 A씨는 아직도 10년 전 출동했던 현장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온전치 못한 시신을 수습하던 순간은 몸서리가 쳐졌다. 이후 힘든 일이 생기면 참혹한 현장들이 먼저 떠올랐다. “내가 조치를 잘했다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자책감과 함께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몰려왔다. 그는 “최근 언론에 보도된 소방관들의 사망 소식이 남 일 같지 않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20일엔 인천소방재난본부 소속 30대 소방관이, 지난 7월 29일엔 경남소방본부 소속 40대 소방관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2022년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한 이후 트라우마를 겪었다.

다른 소방관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경기도의회 ‘경기 소방공무원 치유정책 연구회’가 경기도 소방공무원 6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가 최근 한 달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경험했다고 한다. 절반에 가까운 소방관이 우울감(45%), 수면장애(46%)를 겪었고, 죽음을 생각하는 소방관도 18.8%에 달했다.

지난 7월 대구시 서구 이현동의 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마친 소방관들이 장비를 챙긴 뒤 돌아가고 있다. [뉴스1]
지난 7월 대구시 서구 이현동의 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마친 소방관들이 장비를 챙긴 뒤 돌아가고 있다. [뉴스1]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은 85명. 하지만 ‘공무 수행과의 인과성’이 입증돼 순직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14명뿐이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경기119마음건강센터 박계순 책임상담사는 “매일 각종 사고를 접하는 소방관들은 트라우마에 계속 노출되기 때문에 평소엔 자각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마음의 병이 깊어지는 일이 많다”며 “특히 대형참사나, 아이가 숨졌거나, 지인·동료가 연루된 사고는 충격을 배로 겪는다”고 말했다.

소방청도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찾아가는 상담실’은 지난해에만 7만9453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 인력도 2020년 72명에서 올해는 128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국 소방관서(268개소)의 절반 이상에 상담사가 없다. 소방관들의 심리 치유와 회복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트라우마센터도 경기도의 ‘119마음건강센터’ 한 곳이라고 한다.

소방관들이 마음 놓고 심리 치료 등을 받을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상당수의 소방관이 “술 한잔하면 잊는다”는 식으로 트라우마를 대수롭지 않게 인식하고 있어서다. 한 소방관은 “주변에서 상담을 받는 것을 ‘나약하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고 토로했다.

트라우마는 ‘상처’를 뜻하는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유래한 단어다. 상처는 방치하면 곪는다.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계속 약을 바르고 치료해 완치시켜야 한다. 더군다나 소방관은 최전선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한다. 지자체는 물론 국가가 앞장서서 이들이 마음의 병을 떨쳐내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