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한참 시간이 흘러 의료계에서 또는 역사가들이 ‘의정 사태’로 부를 지, ‘의료 대란’으로 부를지 가늠할 수 없지만, 정부가 ‘의료 개혁의 핵심 추진 과제’라며 ‘의대입학 정원 확대 방안’을 2024년 2월 6일 발표한 이후, 우리나라 의료 분야에 불어닥친 시련의 시간은 필설로 형언하지 못할 상처를 국민들과 의료계에 남겼다. 치열한 연구와 논쟁을 통해 개선을 했어야 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 문제는, 도리어 국민의 걱정과 근심의 대상이 되고 있고, 갈등을 해결해야 할 정치권은 오늘도 갈등을 만들어 내기에 바쁘다. 정치 과잉의 시간은 당분간 계속될 듯 하고, 의료 문제는 이제 우선 순위에서 밀려 뒷전인 듯 느껴진다. ‘쓰나미가 몰려 오는데, 해변에서 조개 줍는 격’이 되어 버린, 천덕꾸러기같은 응급의료 문제를 그러나, 다시 얘기할 수 밖에 없다.
이전에는 ‘필수 의료’라는 용어를 의료계 내에서 쓴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정부가 해당 용어를 사용한 이래, 의료계 내에서 너도 나도 자기 과는 필수의료과라며 경쟁적으로 정부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응급의료가 ‘필수 의료’ 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마 모든 정책 입안자들이, 모든 의료계 관계자들이, 그리고 모든 국민들께서 동의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응급의료는 24시간 365일 제공되어야 하고, 심지어 전쟁 중이라도 그러하다. 오히려 전쟁 상황, 재난 상황에서 더욱 필요하다. 그런데 2024년 추석 연휴까지라고 기억되는데, 일부 언론 기자들은 소위 ‘응급실 뺑뺑이’라며 극성스럽게 의학적 사실 확인조차 안 된 기사들을 발행하였다.
외래나 입원실, 수술실, 중환자실 관련기사가 발행되었는지는 과문한 탓인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줄기차게 응급의료 관련 기사가 발행되었고, 응급의학과 의사들을 비난하고 조리돌림했다. 응급의료가 얼마나 국민들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지, 응급의료가 가장 기본적인 그리고 필수 의료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거듭 말하거니와 의학적 사실 확인이 전혀 되지 않은 채로 발행된 응급의료 관련 기사들로 인해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진료 의지를 점차 잃어 갔고 지쳐갔다.
이제 극악한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지키는 최일선, 필수의료 중의 필수의료라고 할 수 있는 응급의료 분야에서 이번 기회에 국민과 언론의 관심을 통해 실질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확대되든 정지되든 감소되든 향후 국민들은 더 어려워진 응급의료 현장을 체감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 응급의료 자원은 응급의료의 선도국들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인력이나 자원, 시설 모두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소리를 듣는 일본은 인구 800만 명의 오사카부(大阪府, Osaka Prefecture)에 구급구명센터 16개소, 2차병원 응급실 284개소 등 총 300개소의 응급의료기관이 있다.
우리나라 응급의료 매우 취약
반면, 인구 5천만 명의 우리나라 전체 응급의료기관은 권역응급의료센터 44개소, 지역응급의료센터 137개소, 지역응급의료기관 233개소로 총 414개소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관계 법령에 따라 첫 배출된 1996년 이래 2024년 현재까지, 대한응급의학회가 배출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2,776명에 불과하다. 작고하시거나 은퇴하신 전문의 선생님들, 군의관, 공보의 복무를 하고 있는 전문의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현재 전국 응급의료기관에서 24시간 근무하며 진료하기에도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는 사실은 올해 잘 드러나고 있다.
물론 정부도 한 때, 타 임상과 전문의들의 응급실 투입 가능성을 브리핑 중에 언급하거나, 의료계 내에서도 응급의료 분야에서 응급의학과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인식이 가끔 비쳐지기도 한다.
다만 이제 응급의료 현장은 그런 생각들과는 너무나 다르게, 응급 상황에서 기관삽관술이나 중심정맥삽입술과 같은 술기를 시행할 수 있는 임상적 역량을 가지고 있는 타 임상과 전문의들은 점점 찾아 보기 어려워 지고, 무엇보다도 24시간 교대근무가 특성인 응급실 진료를 기꺼이 담당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의사들은 그나마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 외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응급실 호출도 받으며 응급 수술, 시술을 하고 외래, 입원 환자를 보던 것을 당연히 여기던 의료계 문화는 최근 너무도 달라져 있다. 응급실 호출은 받지 않기로 하고 해당 병원과 계약하는 대학병원 교수, 종합병원 과장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면 응급의료 현장을 이탈하지 않고 응급환자 진료를 24시간 잘 할 수 있도록 응급의료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응급실 과밀화가 한 때 의료계 뿐 아니라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과 응급의료기관 평가 등의 방법으로 응급실 과밀화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코로나19 세계적 유행 시기를 거치며 부족한 응급의료자원에 따른 응급실 수용 문제가 소위 ‘응급실 뺑뺑이’라며 최대 현안이 되고 있다. 전술했 듯이 우리의 부족한 응급의료자원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등 관계 법령 개정에 의하여, 그리고 응급의료 분야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인상을 통하여, 정부의 재정 투입을 통하여, 어떻게든 반드시 확충해야 한다.
응급의료 인력확충 지원 필요
임상 경력 16년의 실력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10년 간의 소송 끝에 1년차 신규 전공의 당시의 진료 건에 의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대법원에서 선고받음으로써 의료법 제8조 제5항에 따라 의사 면허가 취소되었으며, 집행유예 만료 후 추가로 2년이 경과해서야 비로소 의사 면허 재교부를 신청할 수 있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서 어느 응급의학과 의사가 응급의료 현장에서 마음 놓고 최선을 다해 응급환자를 진료할 수 있을 것인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이, 응급환자 진료에 임한 의사에게 이런 가혹한 그리고 황당한 처벌을 하며 의사 면허를 박탈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없다.
가장 중요한 의사 인력에 대하여,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지킬 수 있게 형사처벌 면제, 민사상 손해 배상 최고액 제한과 같은 최소한의 법률적 조치들을 시행하는 것이 그렇게 국익에 반하며, 국민들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최선의 응급의료를 받을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 국민들께서 진정 원하시는 바다.
비상진료대책으로 응급진료 전문의 진찰료 수가를 한시적으로 인상하고, 인상분의 50% 이상을 진료 전문의에게 직접 보상하는 대책은 제도화되어야 하며, 상시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일반 진찰료에도 적용되고 있는 야간·공휴 가산 30% 역시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24시간 진료하는 응급 진료의 특성상 오히려 심야 가산까지 신설 고려해야 한다. 응급의료기관에 따라, 평가 등급에 따라 4만1540~6만2310원 정도의 응급진료 전문의 진찰료를 한시적으로 250% 인상해봐야 최고 155,775원이다. 물론 적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의료 선도국의 외래 초진 진찰료 수준이다. 24시간 365일 운영해야 하는 응급실, 최소 응급의학과 전문의 2인과 다수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그리고 행정지원인력이 근무해야 하는 응급의료기관에서 최소한이라고 할 수도 없는 너무나 적은 금액이라는 것을 이제는 정부도 국민들께서도 인정하고 이해해 주셔야 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2025년에는 응급의학과를 포함하여 어느 임상과든지 배출될 전문의 수가 매우 적은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응급의료의 골든타임은 얼마남지 않았다.
출처 :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9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