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를 병원에 이송하는 한 현직 소방공무원이 의료 대란의 현장에서 보고 느낀 바를 편지로 적어 〈시사IN〉 편집국에 보내왔습니다. 편지 전문을 게재합니다.
저는 수도권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119 구급대원입니다. 며칠 전, 〈김현정의 뉴스쇼〉라는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거즈를 붙인 채 출연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새벽에 낙상으로 이마가 찢어져 출혈이 발생해 119에 신고했는데, 병원 22곳에서 수용을 거부한 끝에 겨우 처치 가능한 응급실을 찾아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유명 정치인마저 ‘응급실 뺑뺑이’를 돌았다는 소식에 정치권이 술렁이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보통 낙상으로 인한 이마 열상에 대한 치료는 꼭 의사가 아니라도 PA 간호사(PhysicianAssistant·진료지원인력)나 1급 응급구조사가 의사를 대신하여 환부를 봉합하기도 하는 간단한 처치입니다. 특별한 증상이 없는 단순 열상 환자일 경우, 별도의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김 전 위원장의 사건 이전부터 의·정 갈등은 꽤 오랫동안 이어져왔고, 치료 가능한 응급실을 찾지 못한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도 종종 뉴스에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 치료처럼, 비교적 ‘비응급’에 속하는 환자를 대도시의 병원 스물두 곳이 거절했다는 사실 또한 가벼이 볼 문제는 아닙니다. 이는 응급실에 중증 환자들을 수용하고 치료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료 인력 외에 일상적 비응급 환자를 처치할 만한 여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나마 8월 말 현재까지는 심정지 환자나 중증 환자의 경우는 겨우겨우 병원에서 수용하고 있습니다만, 9월 이후에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응급의료 현장에 접한 저도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실 최근 두 차례 의료 파업(2020년, 2024년) 이전부터 필수 의료 관련 의사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은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구급대원들도 간접적으로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한 지역에서 근무할 당시 상황을 예로 들어보면, 관내에 대형병원이 있었지만 환자의 증상에 알맞은 전문의와 전공의가 없어서 대학병원 중의 대학병원, 종합병원 중의 종합병원을 찾아 서울 소재의 큰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아가 배터리를 비롯한 위험한 물질을 입에 넣었거나 그러한 상황이 의심되는 경우, 소아 환자에게 내시경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관내에 대형병원 어느 곳에서도 진료가 불가능해서 119 상황실 대원과 현장 구급대원이 병원 응급실 전화번호를 찾아 하나하나 전화를 거는 식입니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자 역시 위급 상황에는 서울로 이송해야 했습니다.
응급실은 도처에 존재하고 있지만 모든 환자가 그곳에서 치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2년 전, 서울아산병원의 간호사가 병동 근무 중에 뇌출혈이 발생했지만 응급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서 사망한 사건이 그것을 방증하는 대표 사례입니다.
‘무간지옥’에 있는 것만 같은 고통
서울은 경기도보다 낫지만 그래도 필수 의료 과목 진료가 가능한지, 지금 병원에 환자를 이송해도 되는지 묻는 전화를 구급차 안에서 해야 하는 상황은 동일합니다.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와 구급대원이 환자 분류소를 지나 의사를 만나기까지 꽤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 또한 2020년 의료 파업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은 위에 열거한 이유들로 인하여 각 지역에서 서울에 진료 가능한 상급 병원을 찾아 장거리 이송을 하는 119 구급차와 사설 구급차, 환자들이 늘 대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역으로 서울 소재의 119 구급차가 관내에서 환자를 수용할 병원을 찾지 못해 경기도 소재의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합니다. 의료 파업 이전에는 이런 식으로나마 환자와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 사이를 구급대원들이 간신히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원래도 그리 안정적이지 못했던 응급치료 시스템이, 2024년 의료 파업 이후 한층 더 이상해지고 위태로워졌습니다.
의료 파업이 시작된 이후에는 구급차를 이용하지 않고, 자력으로 응급실에 간 환자들이 응급실 앞에서 119에 신고하기 시작합니다. 사례를 하나 소개하자면, 소아의 손가락이 절단된 상황에서 급하게 찾은 가까운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의사가 없어 수용이 안 된다며 진료를 거절당한 소아 환자의 보호자가 119에 신고했습니다. 그러면 119 구급대원은 응급실 바깥에서 기다리던 환자와 보호자를 구급차에 태워서 한참 동안 수지 접합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길 위에서 전화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형병원에는 의사들이 없어서 서울에서도 진료 가능한 응급실을 찾기 쉽지 않고, 겨우 접합 가능한 개인병원을 찾아 환자에게 이송을 제안하지만 환자는 대형병원이 아닌 개인 의료기관의 술기를 의심하여 119 대원들에게 “제발 대학병원급에서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아달라”고 애원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출동 한 건, 한 건의 처리가 더욱더 쉽지 않아졌습니다. 이송 가능한 병원을 찾아도 그곳에서 기다리는 전국 각지에서 온 환자와 구급차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기에 환자를 병원에 인계하기까지 한참을 응급실 앞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또 다른 문제도 발생합니다. 구급차가 장시간 자리를 비운 사이, 관내의 구급 서비스에 공백이 생기면서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빠르게 대응을 해야 할 구급차가 점점 먼 지역에서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정지 환자, 출혈이 심한 환자, 산소포화도가 낮은 환자, 중증 외상 환자 등 심각한 환자의 골든 타임을 사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관내에 있어야 할 구급차가 제자리에 없기 때문입니다. 먼 거리를 오가야 하고, 오래 기다리고, 돌아가면 구급 수요가 밀려 있는 상황에서 3조 1교대, 하루 24시간을 꼬박 지새워야 하는 소방 구급대원들의 체력도 점점 고갈되어갑니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배후 진료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응급실에 계시는 응급의학 전문의는 말 그대로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응급하게 대증치료를 하는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협진을 통해 응급실에 이송된 환자의 근원적 손상에 대처하지 못하면 환자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흉부외과, 신경외과, 내과, 정형외과 등의 배후 진료가 반드시 이어져야만 병원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성공할 수 있는데, 위 과목 진료를 보는 당직의가 없는 상황에서 빠르게 병원 이송이 요구되는 중증 환자의 경우 이송 가능한 병원을 현장에서 당장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환자를 들것에 실어 구급차에 안착하자마자 구급차의 엑셀을 ‘뿌리 끝까지 밟아’ 출발해야 하는 초응급 상황에서도 갈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구급대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테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구급대원이 된 저는 마치 ‘무간지옥’에 있는 것만 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갈 수 있는 병원은 정해지지 않았는데, 환자는 바이털 사인(vitalsign·활력 징후)을 계속 잃어갑니다. 처치하는 동료 대원들은 거칠게 운행하는 구급차 안에서 위태롭게 처치를 이어가며 서로가 체력적 한계에 도달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서 이송 가능한 병원을 찾을 수 없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심정지 환자의 가슴 압박을 부탁하기도 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제가 근무하는 곳이 아닌 다른 소방서 앞에 구급차를 세워놓고 탈진한 구급대원들을 대신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습니다.
2020년 의료 파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일어난 일이라, 환자 분류소에서 환자에 대한 신속항원검사와 병동 소독 등 여러 방역 절차가 있어서 대기 시간이 오래 소요되었다면, 이번 의료 파업은 그러한 절차가 모두 없어지거나 간소화되었는데도 의사들의 전격적 결집 때문인지 팬데믹 시절보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 같습니다. 병원은 자력으로 응급실에 온 환자에게도 ‘진료는 가능하지만 수술과 입원은 불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으며, 그 말을 들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직접 다른 병원들에 전화를 돌려 수술과 입원이 가능한지 묻고 있는 것이 ‘총파업 결의’ 현수막이 걸린 응급실 앞에서 벌어지는 풍경입니다.
스무 군데, 서른 군데 전화를 돌려서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아볼 수라도 있는 수도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비수도권 지역은 전화를 돌릴 병원마저 없는 경우가 많을 테니까요. 팬데믹 시기 음압병동으로 활용된 지방 공공의료원의 기능이 전부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수도권에서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현직 소방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매 출동이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사건마다 출구가 없는 것 같은 답답함과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실제로 구급차에 탑승하는 간호사와 1급 응급구조사들이 장기 병가를 신청하는 등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 중인 소방대의 구급대원도 절반가량이 이번 여름에 있었던 인사 때 휴직을 희망했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국가고시를 통해 자격증을 획득하여 입사한 간호사나 1급 응급구조사가 아닌, 그들을 보조하는 2급 응급구조사나 2주 구급 교육을 수료한 대원이 그 빈자리를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현장에서의 구급 품질이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현장에서 환자의 정맥로를 확보하여 강심제를 투여하는 등의 전문 술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료 파업의 여파로 소방공무원들도 벼랑 끝에 선 듯한 심정입니다. 정부는 이에 대비하여경증 환자에 대한 본인부담 비용을 90%로 올린다고 밝혔습니다.저희 입장에선 이로 인해 출동 횟수가 적어져 당장은 몸이 편해질 수도 있겠지만, 부작용이 걱정됩니다. 무엇이 응급한 상황인가에 대한 기준은 개인의 감수성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실제로 발바닥에 박힌 가시가 빠지지 않거나, 전날 과음을 해서 숙취가 너무 심하다며 119에 신고하는 환자도 있지만, 팔과 다리가 저리는 듯해서 조금 참아보려 했지만 그것이 뇌졸중으로 인한 마비 증세가 된 이후에야 뒤늦게 119에 신고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만약 그가 팔과 다리에 이상이 있고 말이 어눌하게 나오는 증상에 민감하게 반응했더라면 병원에서 혈전을 용해하는 치료를 긴급하게 받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빨리 신고하지 못해서, 응급실에 갈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결국 영구적인 장애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안타까운 환자도 현장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어쩌면 소화가 되지 않고, 식은땀이 나며 가슴이 답답하고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는 부정맥이나 심실세동의 전조 증상일 수 있습니다.
응급한 상황에 대한 감수성이 낮은 사람들과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위에 든 예시처럼 응급치료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높아 결국 심각한 상태에 이른 이후에야 병원에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응급실에 가는 비용을 올려 현재 의·정 갈등의 난맥상을 해결하려 하는 정책은 시민들을 위협하여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병을 숙환으로 만드는 어리석고 위험한 정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은 이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증상은 환자 스스로도 병원에 가기 어렵다는 것을 납득하고 응급실에 가기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응급실에 가는 길에 방지턱을 하나 설치하는 것은 당장 손쉬운 해결책 같지만, 결국 우리 사회 보건의료에는 더욱 큰 부담을 안길 수도 있습니다.
소설가 김훈은 소방대원들에 대해서,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으니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고 쓴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방대원이 사람을 살려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장비와 인력이 갖춰진 소방 조직, 보건·의료 노동자, 의사 그리고 병원이 견고한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소방대원들은 사람을 살리는 시스템이 단락되고 서서히 붕괴되는 듯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소방대원이 사람을 살려 돌아오는 길이 점점 멀어지고, 또 길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