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과 경북 포항. 두 도시의 거리만큼 김태학(56)씨와 최진경(48)씨는 다른 삶을 살았다. 10년의 격차를 두고 김씨는 포스코, 최씨는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김씨는 제철소 선재공장에서 정비공으로, 최씨는 실험실에서 연구원으로 20대를 끝마쳤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자의 삶을 지켜왔지만, 두 사람의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한 계기는 같다. 김씨는 폐암, 최씨는 유방암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서를 제출해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은 몸에 퍼진 암이 일하다 얻은 질병이라 말한다.
[화학물질에 빠져 살던 연구원]
“지금도 메스꺼움과 비릿한 냄새는 잊히지 않아요.”
20년이 다 됐지만, 최씨는 실험실에서 일하다 나와 바깥 공기를 마신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6년의 실험실 생활에 더해 총 17년8개월간 삼성에서 근무한 최씨가 그 시절 냄새와 울렁거림을 떠올린 곳은 병원이었다. “림프관 4개에 전이가 된 유방암 3기입니다.” 새로운 삶을 위해 퇴사한 지 1년이 지난 2018년 8월,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실내 건축기사 자격증까지 따 “인테리어 업자 아저씨”를 따라다닌 지 한달 만이었다.
최씨가 삼성전자에 입사한 때는 2000년 1월이다. 나라가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사태에서 회복하면서 삼성이 대대적인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저희 과는 웬만하면 다 특채로 입사했어요.” 학부에서 석사까지 재료공학을 전공한 그는 선배들의 길을 따랐다.
연구개발직인 최씨는 삼성 기흥연구소에서 2년, 수원연구소에서 1년간 광소재사업팀 연구원으로 일했고 2003년 1월부터 2005년 12월까지는 엘시디(LCD) 사업부로 이동해 연구소 분석팀과 개발팀을 거쳤다. 계속되는 실험과 야근에 더해 아토피 증세까지 심해지자, 더는 연구소를 출입할 수 없게 됐다. 최씨는 연구소 내 ‘사무직’인 기술기획팀으로 발령받았다.
6년간 실험실에서 다뤘던 수많은 화학물질이 코끝 비릿함의 원인이라는 걸 20대 최씨도 어렴풋이 헤아렸다. “연구 장비를 닦고 나면 화학물질에 빠졌다 나온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몸을 이렇게 무너뜨릴 줄은 몰랐다. 그때는 이런 문제(질병 산재)가 없었으니까.”
최씨의 산업재해 신청을 대리한 노무사는 ‘재해발생 경위 및 요양급여 청구이유서’에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는 아세톤, 아이피에이(IPA·이소프로필알코올), 피아르(PR·포토레지스트) 리무버 등의 유기용제를 다량으로 사용했고 이 밖에 톨루엔, 피시비(PCB), 니켈 및 전자파와 방사선 등에 복합 노출됐으나 변변한 안전 장비는 지급되지 않았다”고 적었다.최씨가 연구실에서 다룬 니켈 등 화학물질은 희귀병 또는 직업성암 진단을 받았던 반도체 산업 종사자들이 다룬 물질과 동일하다.
2019년 3월 최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공단은 최씨의 일과 질병 간 상관관계를 파악하고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1369일(지난 1월31일 기준)째 조사를 마치지 않았다. 그사이 암은 간 등 여러 장기로 옮겨 갔다.
두 사람 모두 기다림의 끝을 낙관하지 않는다. 연구원인 최씨의 실험실과 장비는 이미 사라져버려 현장 조사를 나가도 현황 파악이 안 된다. 근무시간이 분명해 방사선·전자파 피폭량을 기계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오퍼레이터(생산직)와 달리, 생산 라인과 실험실을 수시로 오간 연구원은 유해물질에 얼마만큼 노출됐는지 계산할 근거도 부족하다. “생산 라인 사람들이 암에 걸렸다고 뉴스가 나왔을 때 당연히 저것(유해물질)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질병과 일 간 연관성을) 규명을 못 한다는 거죠.” ‘2년 내에는 (판정이) 날 것’이라는 노무사의 말조차 잊고 살아온 최씨는 “(산재 승인) 안 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겠나”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무직인 최씨가 1년간 부담하는 의료비는 약 300만원 정도. 산재가 인정된다면 전 직장 급여(약 7000만원)의 70%를 휴업급여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비급여 신약을 써볼 작정이다. “한달에 500만원 정도 드는 항암 주사를 의사가 권했는데 (돈이 없어) 몇번 맞지 못할 것 같아 포기했죠.”
1990∼2000년대 초 김씨가 공장에서 다뤘던 세척제, 냉각수도 더는 현장에선 사용하지 않는다. 30여년의 세월 동안 적절한 안전 장비가 주어졌고, 화학물질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각심도 높아졌다. 문제는 과거 김씨와 유사한 환경에서 일한 노동자들이다. 시민단체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에 접수된 포스코 근무 이력의 직업성 암 의심자는 지난해까지 36명이고, 이 중 폐암이 다수(24명)를 차지한다. 문길주 센터장은 “얼마나 더 많은 산재 신청자가 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유사 사례가 잇따르지만, 김씨는 “산재 승인이 늦어지는 게 아니라,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 가서 기자회견을 해도 일회성으로 잠깐일 뿐이더라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앞에 장사 없다는데 우리는 돈 없는 개인이니까요.” 영덕에서 요양 중인 그가 말했다.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 건강보험이 (적용) 안 되는 1000만원짜리 약 먹다가 돈 없으면 이제 죽어야 한다”고 말이다. 휴직 기간 회사에서 나오는 기본급(150만원)으로 요양병원이나 ‘환자방’(서울 대형병원 인근 숙소) 비용 대기에도 빠듯한 그는, 산재 불승인보다 당장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가 더 두렵다. 그간 치료 비용만 해도 4000만원이 훌쩍 넘었다. 휴직 기간 1년 남짓이 끝나면 아픈 몸을 이끌고 그는 다시 출근하거나 퇴직해야 한다. 이들이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